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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함께하는 삶

<나목> 박완서 / 세계사

by 글고운샘 2024. 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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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목
한국문학 최고의 유산인 박완서를 다시 읽는 「박완서 소설전집」 제1권 『나목』. 1931년 태어나 마흔 살이 되던 1970년 장편소설 <나목>이 여성동아 여류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되면서 문단에 등단한 저자의 타계 1주기를 맞이하여 출간된 장편소설 <나목>의 결정판이다. 2011년 타계하기까지 쉼 없이 창작 활동을 펼쳐온 저자가 생애 마지막까지 직접 보고 다듬고 매만진 아름다운 유작이기도 하다. 한국전쟁 후 미8군 PX 초상화부에 근무하던 시절 만난 화가 박수근과의 교감을 바탕으로 창작한 것이다. 초판본에 실린 서문이나 후기를 고스란히 옮겨 실어 저자의 생생한 육성을 들을 수 있다. 특히 소박하고, 진실하고, 단순해서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한 저자의 삶은 물론, 그를 닮은 작품 세계를 배우게 된다.
저자
박완서
출판
세계사
출판일
2012.01.22

 

 요즘 tvN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졸업>에서 국어 일타 강사인 서혜진이 자신의 강의를 염탐하러 온 학생에게 박완서 작가의 소설이 수능에 자주 출제되는 이유를 묻는 장면이 나온다. 힌트는 작가가 태어나고 타계하기까지 1931년부터 2011년까지.

 박완서 작가는 살아생전 자신의 작품이 교과서에 실리거나 수능에 출제되는 걸 원하지 않으셨으나, 어른들이 지독하리만큼 학생들에게 박완서 작가의 작품을 읽히고 싶어 하는 이유가 바로 작가가 살면서 경험했을 법한 대사건들 - 전쟁, 분단의 상처, 산업화가 가져온 인간 사회의 부조리와 병폐, 그리고 유년 시절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어머니 때문이라는 설명.

 

 드라마 속의 설명처럼 박완서 작가는 우리나라 역사의 격동기를 온몸으로 체험한 작가이다.

경기도 개풍군 박적골에서 태어난 박완서는 어릴 적 아버지를 여의고 학구열이 높았던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서울로 이주해 신식 교육을 받는다.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한 지 닷새 만에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의용군으로 나갔던 오빠가 부상을 당하고, 숙부가 죽고, 고향인 박적골이 북한 영토가 되면서 전쟁으로 인한 고통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체험했으며 이를 소설로 기록하게 된다.

 습작 한 번 해보지 않고 쓴 장편소설로, 마흔 살의 그녀를 작가로 데뷔시켜 준 <나목>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미군 부대 안의 초상화 가게에서 일하는 는 전쟁 중 폭격으로 두 오빠를 잃고 엄마와 단둘이 폭격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고가에서 살고 있다. 어느 날 가 일하는 가게에서 옥희도 씨가 초상화 그리는 일을 하게 되고, ‘는 다른 환쟁이들과는 다른 예술가 옥희도 씨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며 그를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이미 결혼도 하고 아이도 있는 옥희도 씨와의 사랑은 이뤄지지 못하고 어머니의 장례식 이후 를 짝사랑하던 전기공 황태수와 결혼해 평범한 가정을 꾸리게 된다. 황태수와의 결혼으로 전쟁의 상처를 고스란히 간직한 고가가 헐리고 평범한 2층 양옥집이 지어지는 것처럼 전쟁도 끝이 나고, 전쟁처럼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웠던 의 방황은 잦아들고 평범한 일상이 이어진다. 그러던 어느 날 옥희도 씨의 유작전에서 본 나목 온몸을 비워둔 채 봄을 준비하는 나무를 보며 옥희도 씨가 바로 나목이었음을 깨닫는다.

 

 한국 전쟁을 배경으로 한 대부분의 소설이 이념의 대립이나 전쟁의 폭력성을 고발하는 것과는 달리 언뜻 보면 <나목>은 연애소설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실제 박수근 화가를 모델로 했다는 점도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소재였으나 그보다는 전쟁으로 인해 집안의 기둥 같았던 두 오빠가 한순간에 죽음을 맞이하고, 어머니는 온통 회색투성이의 산송장이나 마찬가지가 되어버리고, 골목 끝 어두컴컴한 고가는 한쪽이 무너진 채 전쟁의 실상을 보여주고 있음에도 옥희도 씨를 향한 의 감정 묘사가 주를 이루는 내용을 보면서, “경아, 네가 지금 그런 감정 따윈 느낄 때가 아니야!”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전쟁에 동원되지 않기 위해 집 안에서 숨어 지내던 오빠들이 의 말 때문에 행랑채로 은신처를 옮긴 후 폭격에 의해 산산조각이 났을 때의 벗어날 수 없는 죄책감, 사랑받고 싶었던 엄마에게 아들 대신 쓸모없는 딸을 데려갔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원망의 말을 들었을 때의 절망감은 를 온전한 로 두기 쉽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나는 심하게 찢기고 있었다. 새롭고 환한 생활에의 동경과 지금 이대로에서 조금도 비켜설 수 없으리라는 숙명 사이에서 아프게 찢기고 있었다.’라는 말처럼 는 이미 찢어질 대로 찢어져 너덜너덜해졌을 것이므로 정신적으로 많은 혼란을 겪었을 것이다. 그래서 황태수나 미군과의 하룻밤 동침을 통해 자기 자신을 철저히 해체하고 싶었지만 결국 실패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는 누구보다 자존감과 자기애가 높은 사람이기에 나는 결코 나를 가엾게 내버려 둘 수는 없지. 나는 조금씩 내가 소중스러워졌다.’, ‘그러나 나는 미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나는 내 속에 감추어진 삶의 기쁨에의 끈질긴 집념을 알고 있다.’ 그래서 지쳐서 허물어지지 않기 위해 정신적 위안이 되어주는 옥희도 씨를 갈망한 것이다.

 

 <나목>은 전쟁의 참혹함을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전쟁으로 인한 고통과 상처를 를 통한 비유로 잘 보여 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절 전쟁 한가운데 놓인 사람들은 추운 겨울을 맨몸으로 맞서는 나목이었다. 하지만 봄이 오리라는 믿음으로 그 시련을 견뎌냈다.

Pixabay 로부터 입수된  ddzphoto 님의 이미지 입니다.

 

 요즘 북한이 연일 오물 풍선을 띄우고, 전쟁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분단국가에 살고 있지만 비단 무기를 앞세운 전쟁이 아닐지라도 살아가면서 우리는 수없이 많은 크고 작은 전쟁을 겪는다. 어떤 전쟁이든 머지않아 봄은 올 것이므로 나목처럼 봄을 기다리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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