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타샤 튜더, 토바 마틴
- 출판
- 윌북
- 출판일
- 2017.09.20
또 죽었다!
비록 가늘긴 하지만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당당히 고개를 들고 있던 무순들이 실오라기 같은 모습으로 바닥을 향해 철퍼덕! 제멋대로 주저앉아 있다.
“엄마, 왜 물 안 줬어?”
둘째 녀석이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화를 낸다.
“물은 네가 줬어야지. 왜 엄마한테 그래?”
질세라 나도 더 억울한 목소리로 소리를 질러 본다.
무순 키우며 관찰 일기 쓰기. 학교에서 가져온 과제를 제 스스로 하지 않고 엄마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녀석이 얄밉다가도 내 손에만 들어오면 제 생명을 다하지 못하고 장렬히 전사하는 식물들에게 한편으로 미안한 생각이 든다. 그래서 살아있는 식물은 집에 들이지 않으려 했건만 강낭콩 키우기에 이어 무순 키우기까지 교과 과정에 들어있는 과제가 나를 괴롭힌다. 나는 그야말로 식물 키우기에 젬병이다.
최근 식물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인간이 들을 수는 없지만 소리를 지른다는 연구 결과가 국제 학술지인 『셀』에 발표되었다고 하는데 인간이 들을 수 있는 주파수로 식물이 소리를 지른다면 식물들이 나를 향해 얼마나 엄청난 양의 원망의 말들을 쏟아낼지 생각만으로도 두렵다.
반면 타샤의 정원에 살고 있는 식물들은 매일매일 얼마나 즐거운 탄성을 질러댈까? 아마도 정원에 살고 있는 식물들이 매일매일 두런두런 나누는 수다에 온 동네가 떠나갈 듯 떠들썩할 것이다. 엉뚱한 상상이지만 식물의 소리를 실제로 인간이 들을 수 있다면 타샤는 정원 가꾸기를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식물들이 수다 떠는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말이다.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살기 원했던 타샤를 이해하지 못했던 그녀의 남편처럼 도시에서 나고 자라서인지 아직까진 도시에서의 삶, 문명이 주는 편리함이 익숙하고 편한 나는 그녀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도 그녀의 삶에 대해 공감하거나 동경하지는 않았다. 긴 드레스를 입은 채 맨발로 흙길을 걷거나 눈길 위를 걷는다니 매일매일 넘쳐날 빨래와 벌레들은 어떻게 할지,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게다가 30만 평이나 되는 넓은 정원을 관리하려면 하루라도 게을러서는 안 될 일이기에 마음껏 게으름을 피우며 살고 싶은 나는 도저히 못 할 일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직접 식물을 가꾸는 것이 아니라, 그냥 보는 것에 만족하고자 한다. 식물에게까지 나의 관심과 사랑과 애정을 쏟아 붓는 일이 아직 나에겐 너무 벅찬 일이기 때문이다.
불량 엄마, 불량 반려동물 집사이긴 하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강아지를 키우면서 한 생명체를 온전히 키우고 길러내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며 많은 시간을 인내하고 기다려 주어야 함을 깨닫는다. 그래서 말이 통하는 것이든 통하지 않는 것이든 생명의 경중을 따지지 않고 작은 생명 하나도 소중하고 가치 있게 여길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만 생명을 키울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자기가 낳은 자식을, 자기가 키우던 반려동물을 매정하게 암매장한 사람들의 뉴스를 보며 이런 사실을 다시 한번 더 상기하게 된다.
『타샤의 정원』을 읽으면서 작은 생명도 소중함을 노래했던 나희덕 시인이 떠올랐다. 그녀의 작품 중 「배추의 마음」을 소개하며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배추의 마음
나희덕
배추에게도 마음이 있나보다
씨앗 뿌리고 농약 없이 키우려니
하도 자라지 않아
가을이 되어도 헛일일 것 같더니
여름내 밭둑 지나며 잊지 않았던 말
- 나는 너희로 하여 기쁠 것 같아
- 잘 자라 기쁠 것 같아
늦가을 배추포기 묶어주며 보니
그래도 튼실하게 자라 속이 꽤 찼다
- 혹시 배추벌레 한 마리
이 속에 갇혀 나오지 못하면 어떡하지?
꼭 동여매지도 못하는 사람 마음이나
배추벌레에게 반 넘어 먹히고도
속은 점점 순결한 잎으로 차오르는
배추의 마음이 뭐가 다를까
배추 풀물이 사람 소매에도 들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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