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프랑수아 플라스
- 출판
- 디자인하우스
- 출판일
- 2002.02.20
얼마 전, 외계 생명체가 존재할 수도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지구에서 무려 124광년이나 떨어져 있다는, 이름도 생소한 k2-18b라는 행성에서 생명체에 의해 생성되는 화학물질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외계 생명체 존재 여부는 아직 단정 지을 수 없다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SF영화나 소설에 등장하는 외계인이 어딘가에는 존재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딘가에 외계인이 존재한다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어딘가에는 <백설 공주> 이야기에 등장하는 난쟁이도, <걸리버 여행기>에 등장하는 거인들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이 광활한 우주가 단지 인간만을 위한 공간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처음 <마지막 거인>이라는 제목을 보고, 나는 오스카 와일드의 <욕심쟁이 거인>에 나오는 거인처럼 혼자 외롭게 살아가는 거인의 이야기를 상상했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한 동화 이상의 이야기였다. 거인을 통해 ‘비밀의 이중적인 의미’와 ‘인간이 망가트린 자연과 책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부두를 산책하다 늙은 뱃사람으로부터 우연히 ‘거인의 이’를 사게 된 ‘나’는 이에 새겨진 지도를 발견하고 ‘거인족의 나라’를 찾아 여행을 떠나게 된다. 사람의 머리를 절단한다는 와족의 습격을 받는 등 숱한 어려움 끝에 드디어 ‘나’는 거인들이 살고 있는 나라에 도착하게 된다. 기력이 다해 깊은 잠에 빠진 ‘나’에게 다가온 거인들은 정성껏 ‘나’를 돌봐주고, 기력을 회복한 ‘나’는 거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그들을 관찰하고 기록한다. 남자 다섯에 여자 넷, 모두 아홉 명인 거인의 몸에는 발바닥부터 머리끝까지 자연의 모습이 새겨져 있었으며, 봄이 되면 격식을 갖춘 결투를 벌이고, 밤이면 계절의 순환과 같은 자연을 노래하는 등 흔들림 없이 완벽해 보이는 삶을 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떠나온 인간의 세계를 그리워하고, 거인들의 도움을 받아 인간이 살고 있는 곳으로 돌아온다. 영국으로 돌아온 ‘나’는 거인들의 실존을 밝히는 책을 쓰는 작업에 몰두하고, 책이 세상에 나왔을 때 ‘협잡꾼!’이라며 질투와 비난을 보내는 사람들을 보며 ‘불순하고 소소한 지식에 젖어 있는 세상 소인배들의 눈을 뜨게 해주는 것’이 학문의 도리라고 생각하며 순회강연을 시작한다. 그러나 두 번째 원정단을 꾸릴 만큼 충분한 돈을 마련한 후 원정단과 함께 떠나는 길에 ‘나’는 분노와 공포, 고통에 휩싸이게 된다. 거인족 친구인 안탈라의 머리가 여섯 마리의 송아지가 끄는 마차에 실려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또한 다시 찾은 거인들의 나라에는 먼 훗날 어느 박물관엔가 소장될 거인들의 유해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거인들이 실재하고 있다는 달콤한 비밀을 폭로하고 싶었던 내 어리석은 이기심이 이 불행의 원인이라는 것을 나는 마음속 깊이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내가 써낸 책들은 포병 연대보다 훨씬 더 확실하게 거인들을 살육한 것입니다. 별을 꿈꾸던 아홉 명의 아름다운 거인과 명예욕에 눈이 멀어 버린 못난 남자, 이것이 우리 이야기의 전부입니다.”
친구 안탈라의 머리가 마차에 실려 축제에 전시되는 장면에서 ‘나’는 자기 행동이 불러온 참혹한 결과를 목격하고 깊은 죄책감에 빠진다.
‘비밀(祕密)’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면 ‘밝혀지지 않았거나 알려지지 않은 내용’이라는 뜻도 있지만, ‘숨기어 남에게 드러내거나 알리지 말아야 할 일’이라는 뜻도 있다. 이야기 속 ‘나’에게 비밀은 사전의 첫 번째 의미였다. 학자적인 자만심으로 세상의 무지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지식을 설파하는 일이 학자로서의 의무이자 도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거인족의 나라’라는 비밀은 두 번째 의미로 남아있어야 했다.
때로는 비밀이 세상에 드러남으로써 진실을 알리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도 하지만, 때로는 재앙이 되기도 한다. 거인의 존재는 세상의 무지를 밝히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지켜야 할 아름다운 비밀이었기에, 끝까지 숨겼어야 했던 것이다.
『마지막 거인』에서 거인은 단순한 상상 속의 존재가 아니라, 자연 그 자체를 상징한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던 거인이 점점 사라지는 것처럼 인간의 편리를 위해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이 파괴되는 것이다.
나는 문득 내가 무심코 사용하는 일회용품을 떠올렸다. 종이컵에 커피를 타 마시고, 물티슈로 테이블을 닦고, 택배 포장재로 비닐을 쌓는 삶. 가끔은 죄책감에 다회용품을 사용해 보기도 하지만 얼마 후 다시 제자리다. 일회용품이 주는 편리한 삶에 너무나 익숙해진 탓이다.
인스턴트 라면을 만들 때 들어가는 팜유 생산을 위해 열대우림이 사라지고, 오랑우탄과 희귀 생물들이 사라져 가는 현실은, 거인의 멸망이 단지 환상 속 이야기만이 아님을 알려준다.
생물학자인 최재천 교수는 말했다.
“자연에게 길은 곧 죽음입니다.”
자연이 죽으면 인간도 살아남을 수 없다. 마지막의 끝이 죽음이 아닌 이상. 마지막은 새로운 시작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자연이 죽음에 이르기 전에, 자연과 공존하는 새로운 길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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