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이희영
- 출판
- 창비
- 출판일
- 2019.04.19
부모 면접을 통해 부모를 선택하는 아이들
부모로서 나의 점수는 몇 점일까요? 다른 부모들의 점수와 비교해 본다면 평균에도 못 미치는 점수일 것이라는 생각에 벌써부터 부끄러움이 밀려옵니다. NC 센터의 아이들이 '페인트'라는 부모 면접을 통해 본인들의 부모를 스스로 선택하는 것처럼, 우리 아이들이 페인트를 봤다면 자신들의 부모로 나를 선택했을지 자신이 없습니다. 스스로 부모를 선택할 수 있다면, 이왕이면 모든 면에서 완벽에 가까운 부모를 선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출산으로 국가의 존립마저 위태로워지자 국가에서는 NC(National's Children) 센터를 설립하기로 한다. 아이를 출산하고 양육을 원하지 않는 경우 아이들은 NC 센터에 맡겨지고 아이들은 '국가의 아이들'로 거의 완벽한 조건에서 키워지는 것입니다. 아이를 키우기 원치 않는 부모들은 양육에 대한 부담을 줄일 수 있고, 국가에서는 버려지는 아이들을 돌봄으로써 국가의 의무를 다하는 동시에 출생률을 높여 국가를 존속시킬 수 있으니 1석 2조 인 셈입니다.
누군가의 아들이 아닌, NC센터 출신으로 홀로서기를 결심하는 제누
NC 센터에 맡겨진 아이들은 열세 살이 되면 부모 면접, 즉 페인트를 통해 자신의 부모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열세 살은 자신의 의사를 분명하게 표현할 수 있는 나이이고, 여러 차례의 면접과 합숙, 가디의 관리를 통해 비로소 가족으로 묶이는 것이기에 크게 문제 있어 보이지는 않습니다. 더군다나 부모를 만나 NC 센터를 떠나게 되면 NC 출신이라는 기록도 사라지게 되고, 사회에 나가 차별을 받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제누 301은 부모 면접을 통해 새로운 가족을 만드는 것에 회의적입니다. NC 센터의 아이들은 NC센터 출신이라는 차별의 꼬리표를 떼기 위해, 아이들을 입양하려는 부모들은 정부 지원금처럼 본인들이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가족을 이루려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런 제누 301 앞에 처음으로 마음에 드는 프리 포스터가 나타납니다. 바로 하나와 해오름입니다. 그들은 다른 프리 포스터 후보들과 달리 꾸밈없고 솔직한 모습을 보여 주었고,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아닌 친구 같은 관계가 되어도 좋을 것이란 생각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제누 301은 그들을 따라가지 않고, 센터에 남기로 하고 앞으로 부모 면접도 보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표면적으로는 '좋은 아들이 될 자신이 없어서'라고 이야기했지만 가족이라는 이유로 서로가 서로에게 묶여 있는 모습을 보며 그런 인연을 만들 자신도 없었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 대해 확실히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다
제누는 자신이 선택한 색깔로 자신의 미래를 칠해 나갈 것이라는 선택을 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부모의 선택에 의해 미래의 색깔이 결정됩니다.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누군가의 자녀로 태어나 어떤 부모를 만나느냐에 따라 한 사람의 성격이나 가치관, 인생까지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만큼 부모의 역할이라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지 부모라는 이유로 자녀를 부속품처럼 다루거나, 자기의 생각을 자녀에게 강요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하지만 부모 입장에서 굳이 핑계를 대자면 부모들도 부모의 역할이 처음이고 낯선 이이기에 미성숙하고 부족한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고백합니다.
"세상의 모든 부모는 불안정하고 불안한 존재들 아니에요? 그들도 부모 노릇이 처음이잖아요. 누군가에게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는 건 그만큼 상대를 신뢰한다는 뜻 같아요. 많은 부모가 아이드에게 자기 약점을 감추고 치부를 드러내지 않죠. 그런 관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신뢰가 무너져요."
라는 제누의 말처럼 말입니다.
제누는 한편 자녀에 관해서도 이렇게 이야기한다.
"왜 부모에게만 자격을 따지고 자질을 따지세요? 자식 역시 부모와 잘 지낼 수 있는지 꼼꼼하게 따지셔야죠. 부모라고 모든 걸 알고 언제나 버팀목이 되어 줄 수 있을 거라는 환상을 버리라고 하셨잖아요. 부모라고 무조건 희생해야 하는 시대는 지났다고요."
그동안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해 왔던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대해, 한 번도 가족을 이뤄보지 못한 제누가 하는 말을 통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좋은 부모란 모든 것을 다 갖춘 완벽한 부모가 아니라,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고쳐나가려는 열린 마음을 가진 부모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자녀 역시 부모의 희생을 당연한 것으로만 여겨서는 안 될 것입니다.
며칠 전 아픈 둘째 녀석이 잠든 모습을 바라보며 부모가 없는 아이들은 아플 때 얼마나 힘들고 서러울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아프고 힘들 때 마음껏 투정 부리고 위로받을 수 있는 부모님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우리 아이들은 느끼고 있을까요?
<페인트>를 읽고 나서 우리 둘째에게 엄마는 100점 만점에 몇 점이냐는 질문을 던져 봅니다. 아이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백점 만점에 만점!'이라는 대답을 내놓습니다. 부족한 엄마에게 만점이라는 점수를 아낌없이 줄 수 있는 자식이 있음에도 감사합니다.
'부모는 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되어가는 것'
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좋은 부모가 되어가는 내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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