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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함께하는 삶

<힘센 봉숭아> 공선옥 / 창비

by 글고운샘 2023.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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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지 않겠다(큰글자도서)
중견 소설가 공선옥이 지난 5년간 청소년을 위해 써온 단편소설을 엮은 소설집.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라고 외치는 승애의 이야기부터 여자친구에게 선물을 사주기 위해 편의점 '알바'를 뛰는 민수의 이야기까지 총 6편의 작품이 실렸다. 남루하지만 진솔하게 살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웃과 청소년들의 모습이 담긴 작품집이다. 「나는 죽지 않겠다」의 여고생과 「라면은 멋있다」, 「힘센 봉숭아」의 주인공 민수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가난의 굴레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가족들의 모습에 절망하지만 그래도 ‘죽지 않겠다’고, '봉숭아를 닮아 넘어져도 기를 쓰고 살아나리라'고 다짐한다. 「울 엄마 딸」의 승애는 자신을 구속하려 드는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엄마와 같은 처지에 놓이면서 비로소 엄마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깨닫는다. 또한 공선옥의 청소년소설은 다양한 사회적 문제들도 환기시키는데, 「힘센 봉숭아」에서 드러난 파견 근로와 비정규직 문제는 우리 사회가 당면한 주요한 이슈라 할 수 있다.
저자
공선옥
출판
창비
출판일
2018.09.03

 

Pixabay 로부터 입수된  NitStudio 님의 이미지 입니다.

봉숭아물과 함께 한 추억

 

 어린 시절 여학생들이 손톱에 부릴 수 있는 사치라는 것은 봉숭아물을 들이는 게 전부였습니다.  봉숭아 꽃잎과 이파리를 따다 백반과 함께 찧어 손톱 위에 조심스레 얹어 놓고, 행여 잠자는 사이에 떨어질 새라 비닐로 칭칭 동여맨 채 하룻밤 잠을 자고 나면 다음 날 손톱마다 붉은 꽃물이 들었습니다. 첫눈이 올 때까지 손톱 위에 봉숭아물이 남아 있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는 근거 없는 이야기를 맹신하며 길어진 손톱을 자르는 것을 아쉬워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봉숭아'하면 첫눈이나 첫사랑 같은 낭만적인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기도 합니다. 어쩌면 이 소설에 등장하는 '아줌마 떡볶이'집의 아줌마도 나와 비슷한 세대인지 모르겠습니다. 어린 시절 손톱 끝에 봉숭아물을 들였던 추억 때문에 가게 앞에 봉숭아 꽃을 심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봉숭아를 통해 강인함과 아름다움을 느낀 민수

 

 하지만 봉숭아물을 들이던 순수한 시절의 추억과는 달리 이 소설에는 '돈' 때문에 팍팍하고 힘든 삶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려집니다.

 주인공 민수는 여자 친구와 헤어진 충격을 잊기 위해 자주 가던 분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분식점 고객인 '나(민수)'에게는 친절했던 주인아줌마가 아르바이트생인 '나(민수)'에게는 그렇지 못합니다. 아르바이트비를 차일피일 미루는 아줌마에게 화가 난 민수는 가게를 뛰쳐나오다 가게 앞의 봉숭아 화분을 발로 차버리고 알바 업계의 지존이라고 자칭하는 용우와 함께 가게를 찾아가 최저시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돈을 받아옵니다. 집에 돌아온 민수는 '돈' 때문에 힘들어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며 돈이 돈이 아니라 왠지 자꾸만 눈물로 보인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발로 차버렸으나 죽지 않았던 봉숭아를 떠올리게 됩니다. 민수는 아르바이트비로 받은 돈을 안방에 밀어 넣고 '아줌마 떡볶이'집 봉숭아가 아직도 무사하기를 바라며 화분 가게로 향합니다.

 

내가 아줌마네 봉숭아를 다시 화분에 심으려는 이유는, 내가 황폐해지지 않기 위해서다. 나는 아름다워서 힘센 봉숭아를 닮아 넘어져도 기를 쓰고 살아나리라. 나는 화분을 안고 밤바람을 가르며 떡볶이 가게로 달려갔다.

 

 민수는 자신이 화분을 발로 차 쓰러졌는데도 죽지 않은 봉숭아를 보며 강인함과 동시에 아름다움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만큼은 어른들처럼 황폐해지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봉숭아를 화분에 다시 옮겨심기로 합니다. 실연의 상처를 잊기 위해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민수에게 세상은 냉담했고 어른들은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에 바빴지만 민수는 그들과 달라지기로 한 것입니다. 

 어른들이 살아가기에도 세상은 팍팍한 곳입니다. 삶이라는 전투 속에서 생존해야 하기에 어쩔 수 없었노라고 항변하고 싶은 어른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부끄럽고 떳떳하지 못한 방법으로 생존한다 한들 크나큰 부를 얻거나 그 삶이 행복할 수 있을까요?

 청소년 민수가 주인공인 책을 읽으며 어른인 내가 부끄러워졌습니다. 그래서 황폐해진 어른들에게 붉은 꽃잎이 활짝 피어 있는 봉숭아꽃을 선물로 주고 싶습니다. 어린 시절의 순수함을 떠올리거나 그 안에서 아름다운 희망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하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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