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윌리엄 포크너
- 출판
- 현대문학
- 출판일
- 2013.11.08
박제처럼 과거에 머물러 있는 여인
'에밀리에게 바치는 한 송이 장미'라니? 책의 제목만 보았을 때 드라마 주인공 같은 멋진 남자가 에밀리라는 이름의 어감에서 느껴지는 귀여운 여자에게 장미꽃 한 송이를 바치며 사랑을 고백하는 낭만적인 연애 소설일 거라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내 예상에서 완전히 벗어난 이 작품의 결말은 그야말로 충격이었습니다.
미국 남부 제퍼슨시의 명망 있는 가문의 마지막 후계자였던 에밀리 그리어슨 양은 마을의 전통이자 의무이며 관심의 대상인, 그야말로 마을의 상징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시대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살아있는 박제처럼 과거에 머물러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을 사람들의 생각도 이해가 되긴 했습니다. 한때는 가장 고급스러웠던 주택가에 위치한 그녀의 우아한 집도 이제는 마을의 흉물이 되었고, 현대적인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마을의 시장과 시 의원이 되었을 때 그녀는 더 이상 세금 면제와 같은 대우를 받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사망 이후 세상과 단절한 채 자기 안에 갇혀 사는 그녀는, 그녀가 사는 세상의 변화를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세상의 변화 따위는 그녀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은 일이었을 것입니다.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에밀리, 다시 세상과 단절하다
그런 그녀가 세상에 다시 나왔을 때 마을 사람들은 이중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그녀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이유가 바로 북부 출신의 일용직 노동자였던 호머 배런 때문이었으므로, 한편으로는 에밀리 양에게 흥밋거리가 생긴 것을 반가워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남부 귀족 출신의 여인이 북부 노동자 출신인 남자를 만난다는 것에 대해 마을의 수치라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결혼할 거라는 무성한 소문과 함께 에밀리 양의 집으로 들어가는 호머 배런이 마지막으로 목격된 날 이후 그녀는 또다시 세상과 단절하게 됩니다. 그녀가 다시 세상과 만나게 된 것은 그녀의 장례식에서였습니다. 에밀리 양의 장례식을 치른 이후 마을 사람들은 40년 동안 굳게 닫혀 있던 방문을 열었고, 그 안에서 긴 잠에 빠져 이제는 해골이 되어버린 호머 배런의 주검과 마주하게 됩니다.
자신의 사랑을 이룰 수 없게 되자 남자를 독살하고 그의 시신 옆에서 살아온 여자라니...... 공포 영화에나 나올 법한 결말이지만 한편으로는 사랑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처절한 외로움이 이해되기도 했습니다.
세상 밖으로 나올 당신에게 바치는 한 송이 장미
'뒤쪽에는 하얀 옷을 입은 가냘픈 에밀리 양이 서 있었고, 앞쪽에는 그녀의 부친이 그녀에게 등을 보인 채 말채찍을 들고, 두 다리를 벌린 실루엣으로 서 있는 풍경.'
마을 사람들이 기억하는 그리어슨 가의 풍경입니다. 권위적이고 절대적인 존재였던 아버지 뒤에서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며 나약하게 자란 에밀리 양에게 세상은 야생의 정글과도 같았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올바른 인간으로 세상에 서지 못하고 세상과 단절하는 방법을 택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녀의 행동이 정당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혼자 세상에 나아갈 용기가 없었다면 그녀를 도와주길 원했던 마을 사람들이나 친척들의 도움을 받아도 좋았을 것입니다. 스스로 세상과의 단절을 택한 에밀리 양 자신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으며, 비극적 결말은 스스로 자초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낯선 세상과 만나게 되는 일, 변화에 적응해야 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두렵고 힘든 일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세상과 담을 쌓고 나를 가둬버리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소설에는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한 송이 장미. 에밀리에게 바치는 한 송이 장미는 세상과의 소통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세상 밖으로 나오라는 프러포즈가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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