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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함께하는 삶

<역마> 김동리

by 글고운샘 2023. 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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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마(선생님과 함께 읽는)(물음표로 찾아가는 한국단편소설 17)
『선생님과 함께 읽는 역마』는 김동리가 1948년에 발표한 소설로, ‘화개 장터’를 배경으로 인간의 운명과 그에 대응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그린 작품인 《역마》와 함께 작품과 관련한 12개의 물음과 그에 대한 답변이 담겨 있다. 하나하나 읽어 나가다 보면, 미처 알지 못했던 많은 정보와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시험을 위해 공부하고 외워야 하는 내용이 아니라, 작품을 온전히 이해하고 우리 삶에 적용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읽을거리들이다.
저자
박기호
출판
휴머니스트
출판일
2016.12.12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인 사람들

 

  '연예인 사주와 무당 사주는 한 끗 차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연예인 중에 신내림을 받아 무속인이 되는 경우를 종종 목격할 수 있으며, 배우에서 무속인이 된 연예인이 예능 프로에 나와 연예인 출신 무속인이 다시 한번 관심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이들이 대중의 인기를 얻는 연예인이란 직업을 포기하고 무속인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신병'이라 불리는 극심한 고통 때문이었습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신내림 밖에 없었기 때문에 어렵게 내림굿을 받았고, 이후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중에는 본인이 무속인이 되지 않으면 어머니가 단명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신내림을 받았다는 배우도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무속인의 삶은 운명이었고, 운명을 받아들이고 순응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주어진 운명을 거부해서는 안 되며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하다니! 고리타분한 옛날 사고방식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요즘처럼 과학 문명이 발전한 최첨단 시대에도 운명을 바꾸거나 거스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가 봅니다.

 

역마살을 타고난 인물 성기, 운명에 순응하다

 

  '운명'이라는 화두가 나오면 떠오르는 작품이 있습니다. 바로 김동리의 <역마>입니다. '역마(驛馬)'란 '역참에 갖추어 둔 말'을, '살(煞)'이란 사람을 해치거나 물건을 깨뜨리는 모질고 독한 귀신의 기운'을 뜻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역마>의 주인공 성기는 바로 이 '역마살(驛馬煞)'을 타고난 인물입니다. 한 곳에 온전히 정착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떠돌아다녀야 하는 운명 말입니다. 남편도 없이 홀로 성기를 키운 옥화는 어떻게든 성기의 운명을 거슬러 보려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체장수가 잠시 맡아달라고 맡긴 체장수의 딸 계연과 성기를 맺어줄 요령도 부려 보지만 계연이 자신의 이복동생임을 알고 망연자실하며 계연을 떠나보냅니다. 계연이 떠난 후 쓰러져 죽을 고비를 넘긴 성기는 옥화로부터 계연이 자신의 이모라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하고 길을 떠납니다.

 세 갈래 길 앞에 선 성기는, 하동 쪽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발걸음을 옮길수록 마음이 가벼워지고 콧노래까지 나왔습니다. 하동은 어머니인 옥화가 있는 곳도, 계연이 떠나간 곳도 아닌 성기가 받아들인 운명의 길이었습니다. 그에게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인 후에야 그는 홀가분해졌고 마음의 평안을 느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성기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거부하고 계연과의 사랑을 선택해 한 곳에 정착해 살았다면 성기의 남은 인생은 불행했을까요? 사실 계연과 사랑의 결실을 맺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친족 간 결혼을 한다는 것은 우리 정서상 용납되지도 않을뿐더러 법적으로도 허용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 곳에 정착해 사는 것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 운명을 거스르려던 그는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운명'에 무조건 항복을 선언해야 하는 걸까요?

 

운명을 받아들일 것인가, 당당히 맞설 것인가?

 

 '운명'이란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을 지배하는 초인간적인 힘. 또는 그것에 의하여 이미 정해져 있는 목숨이나 처지'를 말합니다. 만약 운명이란 것이 존재한다면 나에게 어떤 운명이 주어져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부딪혀 보기도 전에 지레 겁을 먹고 자포자기하면서 '이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운명이야.'라는 비겁한 핑계를 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또 정해진 운명을 따랐을 때 마음의 평온을 얻고, 행복한 사람도 있겠지만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 나갈 때 육체적인 고통은 따를 수 있겠지만 오히려 마음의 평온을 얻고 행복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결국 운명을 따르느냐 따르지 않느냐는 자신의 선택이며, 그 선택의 결과는 자신이 지면 되는 것입니다.

 한때 유행했던 노래 중에 '운명을 피할 수 없다면 그 운명에 당당히 맞서라.'라는 가사가 있었습니다. 운명을 받아들일 것이냐, 당당히 맞설 것이냐, 어떤 선택이 자기 자신을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있을지 그 선택은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Pixabay 로부터 입수된  Joe 님의 이미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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