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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함께하는 삶

<우상의 집> 최인훈

by 글고운샘 2023. 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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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의 집(최인훈전집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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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최인훈
출판
문학과지성사
출판일
1976.08.01

 

 

Pixabay 의  Ri Butov  이미지

소설과 대화에 담긴 사실

 

  '소설'이란 현실에 있음 직한 일을 꾸며서 쓴 산문 문학을 말합니다. 소설의 첫 번째 특성으로 꼽히는 허구적인 문학이라는 말이지요. 그래서 실제 존재할 수 없는 것 같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에게 "소설 쓰지 마!"라는 핀잔을 주기도 하고, 소설을 읽으면서 그 안에 실제 지명이나 역사적 사건이 등장한다고 해서 그 이야기가 사실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소설은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고, 그 안에서 우리는 삶을 살아가는 지혜나 삶의 진실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기꺼이 우리의 시간을 투자해 소설을 읽는 것입니다.

 그런데 소설이 아닌 대화하는 상대방을 통해 그 사람이 살아온 내력이나 그 사람의 경험을 듣는다면 우리는 그의 이야기가 사실일 것이라 믿으며 그의 이야기를 통해 어느 정도 그를 이해하게 되었다는 반응을 보일 것입니다. <우상의 집>에 나오는 '나'처럼 말입니다.

 

 

철저히 깨어져버린 우상

 

  '나'는 명동의 한 찻집에서 '그'를 만나게 됩니다. 문단에서 확고한 존재였던 K선생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오히려 K선생보다 우위인 듯 행동하는 '그'의 모습과, 사람을 응대하는 데 눈에 띄는 차이를 보이지 않던 K선생이 '그'를 대할 때만은 확연한 차이를 드러내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에게 관심을 갖게 되고, 우연한 기회에 '그'와 친구가 됩니다. 그리고 '그'가 전쟁 중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여인을 구하지 못한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 '그'의 예술가적 기질을 이해하게 되고, '그'에게 여행을 제안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가 건네준 주소를 찾아간 '나'는 '그'가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는 환자이며 그의 이야기가 모두 거짓이었음을 알게 되고, 더는 그 자리에 머물지 못하고 정신병원 밖으로 뛰쳐나오게 됩니다.

 '그'에 대한 '나'의 믿음은 산산조각 나고, '나'는 끝없이 펼쳐진 사막 한가운데 놓여 있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런 '나'와 대조적으로 오히려 '그'는 당당합니다. 거짓말 연애편지로 친구를 골탕 먹이는 것은 괜찮은 장난이라 여기면서, 전쟁이 우리들에게 무엇을 했는지 가르쳐 준 자신의 창조적 거짓말은 병적이라 여기는 사람들을 비난하며, '나'의 얄팍한 우정을 나무랍니다. 그야말로 적반하장이지요. 하지만 '그'의 말에도 일면 일리는 있습니다.

 '그'는 '나'에게 자신이 대단한 예술가인 것처럼 행동한 적도 없고 폭력에 눌려 죽은 여인에 관한 거짓말을 빼면 그냥 단지 '그'의 모습 그대로 보여줬을 뿐입니다. '나'가 '그'를 대단한 존재로 여긴 것은 '그'를 대하는 K선생의 태도와 K선생 앞에서의 '그'의 모습 때문이었습니다. 베이컨의 '우상론'에 따르자면 K선생이 갖고 있는 권위 때문에 '그' 역시 대단한 사람일 것이라는 '극장의 우상'에 빠진 것입니다. '나'에게 '그'는 일종의 우상이었으며, 우상의 집에 방문함으로써 '나'의 우상은 철저히 깨져버린 것입니다.

 

 

편견의 위험성과 소설의 역할에 대한 깨달음을 준 우상

 

 우리는 살아가면서 '나'와 같은 실수를 종종 범하게 됩니다. 사실 여부를 제대로 확인하기도 전에 어떤 선입견이나 편견에 사로잡혀 그것이 마치 사실인 양 믿는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는 진실을 보기 위해 이런 태도는 지양돼야 함을 깨우쳐 줍니다. 또한 소설 같은 '그'의 거짓말을 통해 역설적이게도 소설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합니다.

 '그'는 경험해 보지 않은 사건을 실재했던 사건인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소설을 통해 경험해 보지 못한 다양한 세상과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어떻게 사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해 고민하기도 하며 가치관을 형성해나가기도 합니다. '그'의 소설 같은 거짓말을 통해 우리가 전쟁의 고통에 대해 다시 한 번한번 상기하고, 끔찍한 전쟁이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며 평화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닫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상'은 신이 아니며, 단지 신처럼 숭배의 대상이 되는 존재를 말합니다. 완벽한 진짜 신이 아니기에 언제든 깨질 수도 있는 존재가 바로 우상인 것입니다. 하지만 '그'라는 우상을 통해 '나'가, 또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편견의 위험성과 소설의 역할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으므로 '그'는 여전히 우상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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