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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함께하는 삶

<작별인사> 김영하 / 복복서가

by 글고운샘 2023.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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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인사
김영하가 『살인자의 기억법』 이후 9 년 만에 내놓는 장편소설 『작별인사』는 그리 멀지 않은 미래를 배경으로, 별안간 삶이 송두리째 뒤흔들린 한 소년의 여정을 좇는다. 유명한 IT 기업의 연구원인 아버지와 쾌적하고 평화롭게 살아가던 철이는 어느날 갑자기 수용소로 끌려가 난생처음 날것의 감정으로 가득한 혼돈의 세계에 맞닥뜨리게 되면서 정신적, 신체적 위기에 직면한다. 동시에 자신처럼 사회에서 배제된 자들을 만나 처음으로 생생한 소속감을 느끼고 따뜻한 우정도 싹틔운다. 철이는 그들과 함께 수용소를 탈출하여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길을 떠나지만 그 여정에는 피할 수 없는 질문이 기다리고 있다. 『작별인사』의 탄생과 변신, 그리고 기원 『작별인사』는 김영하가 2019년 한 신생 구독형 전자책 서비스 플랫폼으로부터 회원들에게 제공할 짧은 장편소설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고 집필한 소설이다. 회원들에게만 제공하는 소설이라는 점은 『살인자의 기억법』 발표 이후 6년이나 장편을 발표하지 못했던 작가의 무거운 어깨를 가볍게 해주었다. 작업은 속도감 있게 진행되어 2020년 2월, 『작별인사』가 해당 서비스의 구독 회원들에게 배송되었다. 분량은 200자 원고지 420매 가량이었다. 원래 작가는 『작별인사』를 조금 고친 다음, 바로 일반 독자들이 접할 수 있도록 정식 출간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2020년 3월이 되자 코로나19 바이러스 팬데믹이 시작되었다. 뉴욕의 텅 빈 거리에는 시체를 실은 냉동트럭들만 음산한 기운을 풍기며 서 있었고, 파리, 런던, 밀라노의 거리에선 인적이 끊겼다. 작가들이 오랫동안 경고하던 디스토피아적 미래가 갑자기 도래한 것 같았다. 책상 앞에서 가벼운 마음으로 썼던 경장편 원고를 고쳐나가던 작가에게 몇 달 전에 쓴 원고가 문득 낯설게 느껴진 순간이 왔다. 작가는 고쳐쓰기를 반복했고, 원고는 점점 2월에 발표된 것과는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여름이면 끝날 줄 알았던 팬데믹은 겨울이 되면서 더욱 기승을 부렸고, 백신이 나와도 기세가 꺾이지 않았다. 세계보건기구 WHO가 팬데믹을 선언한 지 2년이 지나서야 작가는 『작별인사』의 개작을 마쳤다. 420매 분량이던 원고는 약 800매로 늘었고, 주제도 완전히 달라졌다.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과 인간이 아닌 존재들을 가르는 경계는 어디인가’를 묻던 소설은 ‘삶이란 과연 계속될 가치가 있는 것인가?’, ‘세상에 만연한 고통을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 것인가’, ‘어쩔 수 없이 태어났다면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어야 할 것인가’와 같은 질문을 던지는 이야기로 바뀌었다. 팬데믹이 개작에 영향을 주었을 수도 있고, 원래 『작별인사』의 구상에 담긴 어떤 맹아가 오랜 개작을 거치며 발아했는지도 모른다. 그것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마치 제목이 어떤 마력이 있어서 나로 하여금 자기에게 어울리는 이야기로 다시 쓰도록 한 것 같은 느낌이다. 탈고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원고를 다시 읽어보았다. 이제야 비로소 애초에 내가 쓰려고 했던 어떤 것이 제대로, 남김 없이 다 흘러나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_’작가의 말’에서 전면적인 수정을 통해 2022년의 『작별인사』는 2020년의 『작별인사』를 마치 시놉시스나 초고처럼 보이게 할 정도로 확연하게 달라졌다. 그리고 김영하의 이전 문학 세계와의 연결점들이 분명해졌다. 제목을 『작별인사』라고 정한 것은 거의 마지막 순간에서였다. 정하고 보니 그동안 붙여두었던 가제들보다 훨씬 잘 맞는 것 같았다. 재미있는 것은 ‘작별인사’라는 제목을 내가 지금까지 발표한 다른 소설에 붙여 보아도 다 어울린다는 것이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검은 꽃』, 『빛의 제국』, 심지어 『살인자의 기억법』이어도 다 그럴 듯 했을 것이다. _’작가의 말’에서
저자
김영하
출판
복복서가
출판일
2022.05.02

 

Pixabay 의  bruce lam  이미지

 

 

과학 기술로 인해 탄생한 어느 먼 미래

 

  1996년 복제양 '돌리' 탄생 이후 복제 인간의 탄생이 가능한 시대가 곧 다가올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복제 인간에 대한 윤리적 논쟁이 이어졌습니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 복제 인간은 아직 탄생하지 않았고, 현대의 과학 기술로는 복제 인간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다고 합니다. 이렇게 과학 기술이 발전하면 할수록 우리는 과학 기술을 이용하는 데 있어 건강하고 편리한 인간의 삶을 영위하는 것이 우선인가, 아니면 윤리적 가치관을 지키는 것이 우선인가를 놓고 갈등하게 됩니다. 그리고 환경 문제는 물론 최근에는 AI의 발달로 인간의 일자리가 위협받게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오면서 과학 기술의 발전이 과연 인류에게 이롭기만 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도 갖게 됩니다.

 김영하의 장편소설 <작별인사>는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도래할 수 있는 어느 먼 미래를 배경으로 한 소설입니다. 처음 <작별인사>라는 제목만 보았을 때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소재로 한 소설일 것이라 예상했지만 첫 장부터 저의 예상이 완전히 비껴갔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처음부터 등장하는 등장인물 철이, 최진식 박사, 누가 봐도 한국식 이름을 갖고 있는 이들 부자가 살고 있는 환경은 마치 외국처럼 낯설게만 느껴졌습니다.

 

휴머노이드의 세상이 된 지구

 

 연구원인 아버지와 휴먼매터스 안에서 평화롭게 살던 주인공 철이는 어느 날 펫 숍 안으로 들어간 아버지를 깜짝 놀라게 해주기 위해 기다리다가 낯선 두 남자에 의해 납치됩니다. 그동안 자신이 인간이 아닐 거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철이는 사실 등록되어 있지 않은 휴머노이드였습니다. 또  난생처음 맞게 된 휴먼매터스 밖의 세상은 철이처럼 자기가 인간인 줄 아는 휴머노이드들에게는 지옥 같은 곳이었습니다.  무등록 휴머노이드 단속법이 발효되면서 등록되지 않은 휴머노이드는 바로 압수해서 처분할 수 있게 되었고, 자신이 인간이라 믿었던 무등록 휴머노이드 철이 역시 처분될 운명이었습니다. 휴머노이드들의 수용소인 이곳에서는 자신들이 기계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기계파 휴머노이드들과 인간의 기능을 그대로 흉내 낸 하이퍼 리얼 휴머노이드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선이처럼 장기이식을 목적으로 복제된  클론, 이렇게 세 부류가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용소가 공격을 당하고 벽이 무너지면서 인간 민병대원들과 전투용 휴머노이드들이 수용소 안으로 진입했습니다. 철이와 선이는 민이와 함께 수용소를 탈출하지만 도망친 휴머노이드들을 잡으려는 체포조에 의해 민이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여러 번 죽음의 고비를 넘기 철이는 신체 내부에 장착된 무선통신 모듈을 통해 아빠와 다시 연락이 닿아 재회하게 됩니다. 하지만 또다시 전투용 휴머노이드들과 공격용 드론에 의해 공격을 받게 됩니다. 이때 철이는 몸을 잃게 되고 머리만 남게 되어 철이의 의식은 네트워크에  연결돼 활성화됩니다.

 이제 세계는 인공지능 없이는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고, 엔지니어 휴머노이드들에 의해 다시 몸을 얻게 된 철이는 선이를 찾아 시베리아로 떠나고 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다 마지막 남은 인간인 그녀의 죽음을 곁에서 지키게 됩니다. 그리고 바람이 불고 자작나무 잎들이 사각거리는 시간, "끝이 오면 너도 나도 그게 끝이라는 걸 분명히 알 수 있을 거랴."라는 선이의 음성처럼 자신에게도 죽음의 때가 찾아왔다는 것을 실감하며 자신의 의식을 떠나보내며 이야기가 끝이 납니다.

 

기계 문명의 끝에 찾아온 자연 상태

 

 <작별인사>는 AI가 인간과 구별되지 않을 정도로 흡사하게 제작될 수 있는 먼 미래가 배경인 소설입니다. 우리는 인간과 기계의 가장 큰 차이점으로 감정의 유무를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소설 속에 등장하는 휴머노이드들은 인도적인 목적에 의해 탄생하게 된 감정을 가진 기계였습니다. 하지만 최박사는 단지 인간과 마찬가지인 기계를 만들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철이처럼 인간과 흡사한 휴머노이드들이 많아지면 인간은 그들을 더 이상 기계나 상품처럼 취급하지 않을 것이고, 함께 대화하고 감정을 교류하며 함께 공존해 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과학 기술이 진화하면서 기계 지능은 인간들의 지능을 뛰어넘어 인간의 공격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은 물론 인간의 연약한 육체로 탐험할 수 없는 우주 먼 곳까지 우주선을 보내는 등 인류가 사라진 곳에서 지구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물론 인공지능이 인간 이상으로 발전해 인간과 대립하고 인류를 멸망시키려고  반란을 일으키는 내용들을 소재로 한 영화는 많이 봐왔지만 인류 스스로 자멸하게 된다는 스토리는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환경의 변화에 발맞춰 진화한 존재만 살아남을 수 있다면  AI가 살아 남고 인류가 멸망하는 일도 어쩌면 가능하리라는 생각. 어쩌면 인간이 하지 못한 생각이 아니라, 애써 부정하고 싶었던 생각을 작가는 소설로 써 내려간 것이 아닐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또 한 번의 충격은 더 이상 인간을 닮은 무엇인가를 만들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한 기계들이 작동을 중단하고 자연 상태로 돌아가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인류세를 살아가고 있는 지금, 인간으로 인해 파괴된 지구 환경 앞에서 인간은 지구의 운명을 걱정하는 한편 끊임없이 인류의 지속을 위해 과학 기술을 발전시켜 나가는 아이러니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인류는 인류의 이야기를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까요? 마지막 작별인사를 나누어야 하는 순간 우리는 어떤 모습일지, 어디까지 기술을 발전시켜 나가고, 그 기술을 어떻게 이용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해 정답을 알고 싶은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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