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김영하
- 출판
- 복복서가
- 출판일
- 2022.05.02
과학 기술로 인해 탄생한 어느 먼 미래
1996년 복제양 '돌리' 탄생 이후 복제 인간의 탄생이 가능한 시대가 곧 다가올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복제 인간에 대한 윤리적 논쟁이 이어졌습니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 복제 인간은 아직 탄생하지 않았고, 현대의 과학 기술로는 복제 인간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다고 합니다. 이렇게 과학 기술이 발전하면 할수록 우리는 과학 기술을 이용하는 데 있어 건강하고 편리한 인간의 삶을 영위하는 것이 우선인가, 아니면 윤리적 가치관을 지키는 것이 우선인가를 놓고 갈등하게 됩니다. 그리고 환경 문제는 물론 최근에는 AI의 발달로 인간의 일자리가 위협받게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오면서 과학 기술의 발전이 과연 인류에게 이롭기만 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도 갖게 됩니다.
김영하의 장편소설 <작별인사>는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도래할 수 있는 어느 먼 미래를 배경으로 한 소설입니다. 처음 <작별인사>라는 제목만 보았을 때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소재로 한 소설일 것이라 예상했지만 첫 장부터 저의 예상이 완전히 비껴갔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처음부터 등장하는 등장인물 철이, 최진식 박사, 누가 봐도 한국식 이름을 갖고 있는 이들 부자가 살고 있는 환경은 마치 외국처럼 낯설게만 느껴졌습니다.
휴머노이드의 세상이 된 지구
연구원인 아버지와 휴먼매터스 안에서 평화롭게 살던 주인공 철이는 어느 날 펫 숍 안으로 들어간 아버지를 깜짝 놀라게 해주기 위해 기다리다가 낯선 두 남자에 의해 납치됩니다. 그동안 자신이 인간이 아닐 거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철이는 사실 등록되어 있지 않은 휴머노이드였습니다. 또 난생처음 맞게 된 휴먼매터스 밖의 세상은 철이처럼 자기가 인간인 줄 아는 휴머노이드들에게는 지옥 같은 곳이었습니다. 무등록 휴머노이드 단속법이 발효되면서 등록되지 않은 휴머노이드는 바로 압수해서 처분할 수 있게 되었고, 자신이 인간이라 믿었던 무등록 휴머노이드 철이 역시 처분될 운명이었습니다. 휴머노이드들의 수용소인 이곳에서는 자신들이 기계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기계파 휴머노이드들과 인간의 기능을 그대로 흉내 낸 하이퍼 리얼 휴머노이드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선이처럼 장기이식을 목적으로 복제된 클론, 이렇게 세 부류가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용소가 공격을 당하고 벽이 무너지면서 인간 민병대원들과 전투용 휴머노이드들이 수용소 안으로 진입했습니다. 철이와 선이는 민이와 함께 수용소를 탈출하지만 도망친 휴머노이드들을 잡으려는 체포조에 의해 민이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여러 번 죽음의 고비를 넘기 철이는 신체 내부에 장착된 무선통신 모듈을 통해 아빠와 다시 연락이 닿아 재회하게 됩니다. 하지만 또다시 전투용 휴머노이드들과 공격용 드론에 의해 공격을 받게 됩니다. 이때 철이는 몸을 잃게 되고 머리만 남게 되어 철이의 의식은 네트워크에 연결돼 활성화됩니다.
이제 세계는 인공지능 없이는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고, 엔지니어 휴머노이드들에 의해 다시 몸을 얻게 된 철이는 선이를 찾아 시베리아로 떠나고 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다 마지막 남은 인간인 그녀의 죽음을 곁에서 지키게 됩니다. 그리고 바람이 불고 자작나무 잎들이 사각거리는 시간, "끝이 오면 너도 나도 그게 끝이라는 걸 분명히 알 수 있을 거랴."라는 선이의 음성처럼 자신에게도 죽음의 때가 찾아왔다는 것을 실감하며 자신의 의식을 떠나보내며 이야기가 끝이 납니다.
기계 문명의 끝에 찾아온 자연 상태
<작별인사>는 AI가 인간과 구별되지 않을 정도로 흡사하게 제작될 수 있는 먼 미래가 배경인 소설입니다. 우리는 인간과 기계의 가장 큰 차이점으로 감정의 유무를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소설 속에 등장하는 휴머노이드들은 인도적인 목적에 의해 탄생하게 된 감정을 가진 기계였습니다. 하지만 최박사는 단지 인간과 마찬가지인 기계를 만들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철이처럼 인간과 흡사한 휴머노이드들이 많아지면 인간은 그들을 더 이상 기계나 상품처럼 취급하지 않을 것이고, 함께 대화하고 감정을 교류하며 함께 공존해 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과학 기술이 진화하면서 기계 지능은 인간들의 지능을 뛰어넘어 인간의 공격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은 물론 인간의 연약한 육체로 탐험할 수 없는 우주 먼 곳까지 우주선을 보내는 등 인류가 사라진 곳에서 지구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물론 인공지능이 인간 이상으로 발전해 인간과 대립하고 인류를 멸망시키려고 반란을 일으키는 내용들을 소재로 한 영화는 많이 봐왔지만 인류 스스로 자멸하게 된다는 스토리는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환경의 변화에 발맞춰 진화한 존재만 살아남을 수 있다면 AI가 살아 남고 인류가 멸망하는 일도 어쩌면 가능하리라는 생각. 어쩌면 인간이 하지 못한 생각이 아니라, 애써 부정하고 싶었던 생각을 작가는 소설로 써 내려간 것이 아닐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또 한 번의 충격은 더 이상 인간을 닮은 무엇인가를 만들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한 기계들이 작동을 중단하고 자연 상태로 돌아가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인류세를 살아가고 있는 지금, 인간으로 인해 파괴된 지구 환경 앞에서 인간은 지구의 운명을 걱정하는 한편 끊임없이 인류의 지속을 위해 과학 기술을 발전시켜 나가는 아이러니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인류는 인류의 이야기를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까요? 마지막 작별인사를 나누어야 하는 순간 우리는 어떤 모습일지, 어디까지 기술을 발전시켜 나가고, 그 기술을 어떻게 이용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해 정답을 알고 싶은 밤입니다.
'독서와 함께하는 삶'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 갈라파고스 (0) | 2023.04.19 |
---|---|
<위대한 개츠비>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0) | 2023.04.10 |
<긴긴밤> 루리 / 문학동네 (0) | 2023.04.05 |
<영희가 O형을 선택한 이유> 방미진 (0) | 2023.04.03 |
<파리대왕> 윌리엄 골딩 (0) | 2023.04.0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