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윌리엄 골딩
- 출판
- 민음사
- 출판일
- 2000.10.16
인간의 본성은 선한가, 악한가
최근 뉴스를 읽다 보면 끔찍한 사건들이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할 수 없습니다. 학교폭력으로 같이 공부하던 친구를 사망에 이르게 해 놓고도 아무런 죄의식 없는 아이들, 기르기 힘들다는 이유로 채 돌도 되지 않은 친자식을 폭행하고 방치해 숨지게 한 부모......
순수하고 밝은 동심을 가져야 할 아이들이 살인을 저지르고, 자식에게 모든 것을 내어 줄 수 있는 모성을 가진 어머니가 자기 자식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인간이라는 존재가 본래 악한 존재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날 과거에 비해 흉악한 범죄가 증가하고 그 수법도 잔인해진다고 하지만 과거에도 흉악한 범죄들은 발생했고, 시간이 흐르면서 범죄도 진화하는 것일 뿐, 학교에서 도덕이나 윤리를 가르치고 사회에서 법과 제도를 통해 계도를 해도 범죄는 여전히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란 과연 선한 존재인가 악한 존재인가에 대한 논쟁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이어져 왔습니다. 인간은 본래 선한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의 선한 본성을 잘 계발하면 사회의 혼란을 막을 수 있다는 '성선설'이나, 인간은 본래 악한 존재이기 때문에 법과 제도를 통해 인간의 악함을 통제하고 관리해야 사회 질서가 유지될 수 있다는 '성악설'은 이미 도덕이나 윤리 시간을 통해 익히 들어 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윌리엄 골딩은 그의 작품 <파리대왕>을 통해 인간은 선과 악, 어느 한쪽만 갖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양쪽 가운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존재라고 이야기합니다.
무인도에 표류한 아이들을 통해 바라본 선악의 세계
핵전쟁을 피하려다 무인도에 표류하게 된 어린 소년들은 구조가 되기 전까지 자신들을 이끌어 줄 지도자로 랠프를 선출합니다. 랠프는 지적 능력이 뛰어난 피기의 조언을 받아 아이들을 민주적으로 이끌어나가려 합니다. 하지만 사냥대원을 이끌게 된 잭은 원시적인 충동과 본능에 휩싸여 무력을 통해 아이들 위에 군림하고자 합니다. 아이들은 점점 '악'을 상징하는 잭에게 동화되고 결국 사이먼과 피기를 살해하기에 이릅니다. 문명사회에서 법과 제도를 통해 규제를 받던 아이들이 무인도라는 야생의 공간에서는 자신들의 내면을 지배하고 있던 '악'이라는 본능을 분출해 내는 모습을 통해 인간은 '선, 악'이라는 양면성을 모두 갖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는 것입니다.
윌리엄 골딩은 2차 세계 대전 동안 5년 간 영국 해군에서 복무하면서 인간이 얼마나 잔인하고 야만적인 존재로 변할 수 있는지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벌이 꿀을 만들듯이 인간은 악을 만들어낸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악이란 제어될 수 없는 것일까요?
아이들과 함께 무인도에 표류했지만 잭에게 휩쓸리지 않았던 랠프에게 그 해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랠프 역시 선하다고만은 말할 수 없는 인물입니다. 피기에게 여러 가지 조언을 받으면서도 그의 진짜 이름이 무엇인지 관심을 갖지도 않았고, 잭에 속한 무리의 아이들이 폭풍우 아래에서 광기 어린 춤을 출 때에는 그 안정된 집단에 끼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봉홧불을 꺼트린 일에 대해 잭에게 화를 내면서도 그가 사냥해 온 고기를 받아먹기도 합니다. 하지만 랠프는 마지막까지 민주적인 절차나 제도를 지키고자 했습니다.
우리들 각자의 마음에 자리 잡은 악
'악'이란 인간의 마음속에 내재된 본성이기 때문에 완전히 악을 근절하기란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불가능한 일을 실천하려는 허황된 꿈을 꾸기보다는, '선'과 '악'의 대결에서 '악'이 지배하는 힘이 커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파리대왕>이 쓰인 1954년은 2차 세계 대전 이후의 냉전 시대로 전 세계적인 불안과 공포가 팽배했던 시대였습니다. 사람들은 불안과 공포를 느낄 때 자신들을 구원해 줄 메시아를 기다리게 되고, 공포심에 눈이 가려져 잘못된 선택을 할 수도 있습니다. 무인도에 표류한 아이들이 스스로 만들어 낸 괴물에 대한 공포심으로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행동을 정당화한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만들어 낸 괴물에 대해 파리대왕은, 괴물은 우리들 각자의 마음속에 있음을 경고합니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는 크고 작은 범죄들이 매일 일어나고 있으며 전쟁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는 나라들도 많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파리대왕이 우리에게 외치는 경고를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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